후박/전원일

 90년대말의 일이다

"사장님.다대포 강변도로를 오는데 제주도에서 가져왔다고하면서 호박나무를 심고 있데예 우리 부산에서도 살수 있습니꺼"

 다대포중학교 조경공사 현장을 다녀온 직원이 트럭에 실린 삽과 곡괭이를 내린후 땀을 뻘뻘흘리며 사무실에 들어오면서 말했다

"ㅎㅎㅎ호박나무가 어디있어 후박나무겠지. 글쎄다. 후박(厚朴)나무는 남해해안이나 제주도 등지에 사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이고 기온이 따뜻해야 잘살텐데 부산은 연간 기온이야 타지역보다 높지만 어쩌다 한파가 몰려오면 그 추위가 만만찮은데 부산시청 녹지과나 동아대 조경과 교수님들에게 자문을 얻어서 심었겠지 그리고,지난해  당감동 어느 초등학교 교사(校舍)뒷쪽에가니 7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후박나무가 살고 있더군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당감동에서 제일 먼저 후박나무를 가로수로 심었던걸..."

직원에게 그렇게 말은 했지만 과연 후박나무가 부산에서 적응을 잘해서 살수있을까하고 걱정이 된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그렇게 걱정을 하게된 배경은 지난해 화단초등학교 언덕바지 길이 백미터 .폭 8미터에 동백나무 식재를 한 아픈 기억때문이었다 원래 학교측에선 산다화(일명/애기동백)을 심어 달라고했으나 가격이 엄청 비싸고 더구나 키가 2미터되고 천그루가 넘는 산다화를 구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학교측에 설득을 해서 값이 싼 동백나무를 심어주기로 합의를 본후 남해와 거제도 등지에 동백나무를 사입하려 다녔지만 동백나무 또한 가격이 만만찮아서 결국 제주도지역에까지 나무 수배를 했는데 나무 가격은 남해나 거제도에 비해 삼분의일 정도 저렴해서 천그루의 나무를 실고와서 동백나무 군락지를 만들어 주었는데 동백나무는 부산의 기후와 토양에 적응을 못해 5분의1정도는 고사했고 남은 나무들도  하지(下枝)가 자꾸 말라서 몇년간 정성을 기우려서야  겨우 건강한 동백나무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나는 그런 동백나무를 예의주시했는데 무엇보다 동백이 자라온 토양이 제주도 특유의 검은 토양에서 자란것을 알았고 그런 토양은 빨리 건조해져서 흙이 마르면 애기 벼개처럼 가벼워서 육지의 마사토나 양토에 자란 나무와는 느낌부터가 달랐었다 물론 가벼우니 나무를 메고 이동하는것은 쉽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너무 가벼우니 나무가 말라죽은건가하고 걱정을 하면서 심었던게 사실이다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제주도에서 자란 묘목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엄궁동에서부터 다대포까지 강변도로변에 심어놓은 후박나무가 겨울을 이겨내지 못하고 절반 이상이 죽었다는 소식이 방송에 나왔다

"드디어 올것이 왔군!..후박나무가 절반이 죽었다는 말이지!!"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다음날 아침 후박나무가 죽은 다대포현장을 찾아갔다 후박나무는 추위에 얼마나 오들오들 떨다가 죽었는지 수피(나무껍질)가 말라서 갈라진 상태로 죽어 있었다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죽은 나무 숫자를 일일이 확인하면서 살폈다 그 숫자는 엄청났었다.

그러나 내가 후박나무에게 할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부산시에서 발주한 공사이고 공사를 맡은 회사는 2년동안 죽으면 다시 심어줘야하는  하자책임기간이있으므로 다시 나무를 심으려할꺼니까 싶었다 그러나, 더욱 걱정이 되는것은 후박나무를 다시 심을텐데 다시 가지고와서 심어도 죽으면 어쩐담 그냥 이곳 부산에서 잘자라는 나무를 심어면 안될까하는 걱정을 하면서 사무실로 돌아왔지만 추워서 동사(冬死)한 후박나무의 모습이 내곁을 떠나지 않았고 그날밤 나는 '후박나무'라는 시상을 떠올렸다

       후박나무

먼 제주도에서 시집을 왔다

가기 싫은 출가지만

엄격한 판서 어른께선

정략이라며

문간 밖으로 내 모신다

대문 밖에 세워진 25톤 트럭이

가마인 양 조용히 대기하고 있다

뱃머리에서 갈매기에게

인사할 여유도 없이

숨죽여 시선을 깔고 앉아 있다

해풍과 해무를 이겨내고

설움의 눈물을 훔친다

이윽고 배가 머리를 댄곳은

북위35도 척박한 뭍

낯선 토양.추운 기후와

마구잡이 내뿜는 CO2를 참아내며

한많은 시집살이가 시작된다

                  전원일 詩<후박나무>전문

이 시는 이듬해 60여종의 다른 나무들과 함께 한권의 시집속에 탄생했는데 나는 그 시집을 들고 부산여대 음대교수및 부산시향 상임지휘자로 재직하시는 김동조 교수님 집을 방문했다 교수님을 찾아간 목적은 (사)부산곤충연구협회가 해마다 거행하는 생태복원사업을 의논하기 위해서였는데 내가 내민 시집을 훑어보시던 교수님은 갑자기 이 시가 가곡을 만들면 좋겠는걸하고 시를 낭독하셨다

그리곤,사모님에게 오선지를 가지고 오게해서 순식간에 음표를 그려 넣었는데 한시간 정도 악보를 손질하시더니 피아노엘 앉으면서 사모님과 나를 옆에 서게 한후 노래를 불러 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악보를 볼줄 모르는 사람이라 옆에서 우두커니 서있기만 했고 사모님은 몸과 팔을 돛단배처럼 흔드시면서 노래를 불렀다

후박나무가 생명을 얻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몇번의 악보를 손질한후 '후박나무'는 부산시향 창작발표회에서 소프라노 가수 김**의 목소리로 <뽕나무>라는 시와 함께 생명을 얻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CD음반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그후부터 후박나무는 나의 대표시처럼 알려졌음은 물론 나의 호(號)로써 인터넷상의 나의 닉으로도 사용되어 오늘까지 사랑받고 있는것이다


출처 :나무와 시인 원문보기▶   글쓴이 : 후박/전원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