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과 식물의 역사
외떡잎식물에 포함된 난초들(난초과 식물들)의 역사는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요?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지에 따르면 난초들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전에 등장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화석으로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난초들의 흔적은 신생대 3기 마이오세 지층(기원전 1500만년 ~ 2000만년)에서 발견된 벌의 날개에 묻은 난초과 식물의 꽃가루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 시기에는 이미 난초들이 존재하였다는 것이며, 과학자들에 따르면 그 기원은 대략 800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역사에 비할 수 없는 긴 역사를 가진 난초는 공룡과 함께 번영을 누렸고, 공룡들이 멸종된 후로도 지구의 급격하고 혹독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면서, 꾸준히 번식의 사슬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BBC와 함께 다큐멘터리 ‘The Private Life of Plants’를 제작하고 동명의 저서도 출판한 영국의 유명한 자연주의자 데이비드 아텐보로경에 따르면 전세계 각지에 분포된 난초는 오래도록 세밀하게 진화된 고등 식물이라고 합니다. 모든 식물이 다 그러하겠지만 난초 역시 긴 세월 동안 심각한 지층 변화와 여러 번의 빙하기를 거치면서도 종의 번식을 성공해왔는데, 과학자들이 전하는 난초들의 독특한 생존전략은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난초들의 성적 유혹
많은 식물들이 꽃가루받이를 위한 매개자로 곤충을 이용하기 위하여 달콤한 꿀과 꽃가루를 제공해줍니다. 하지만 많은 난초들은 진화의 과정에서 고비용의 꿀을 제공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 중 일부의 난초들은 자신들의 꽃가루 매개자로 선택한 특정 곤충의 모양과 유사한 모양의 꽃을 피워냅니다. 그래서 특정 난초 종류의 꽃가루 매개자로 선택된 곤충의 수컷은 암컷 곤충의 모습과 그 냄새에 유혹되어 난초 꽃을 찾아오게 됩니다. 그리고는 꽃에 앉아 열심히 교미를 시도하지만, 교미는 성공하지 못하고 난초의 의도대로 꽃가루만 잔뜩 묻히게 될 뿐입니다. 사진 1과 2는 앞에서 언급한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한 장면입니다. 벌난초에 앉은 말벌은 교미를 하기 위해 열심히 암컷을 닮은 꽃 속을 드나들지만 목적을 달성하진 못하고 교묘하게 위치한 수술에서 꽃가루만 잔뜩 묻히게 됩니다. 벌의 입장에서는 성과가 없었지만, 벌난초의 입장에서는 꽃을 만든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한 셈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모양으로 유혹하는 경우도 있지만, 먹이가 아닌 다른 것을 반대급부로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남아프리카의 어느 난초들은 특정 곤충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사용하는 향수를 만들어 꽃가루받이의 대가로 벌에게 제공하기도 합니다.
<BBC 다큐멘트리, The Private Life of Plants에 소개된
암벌의 모습을 한 꽃을 피워 곤충을 유혹하는 난초들의 모습>
썩은 냄새를 풍기는 난초
화원에서 크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 서양란을 발견하면 어떤 향기가 날까 하여 코를 가까이하여 냄새를 맡아 보는 경우가 있는데, 때로는 썩은 고기 냄새 같은 악취가 나는 경우가 있어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나탈리 앤지어의 ‘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이란 책에서도 이런 난초들의 특이한 번식 전략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난초는 파리를 꽃가루받이 매개자로 이용하고 썩은 고기 냄새를 풍겨서 먹이를 찾는 파리를 유혹 하기 때문입니다. 냄새에 이끌려 찾아온 파리는 고대하던 먹이는 얻지 못하고 난초의 꽃가루받이 역할만 수행하고 가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도 자생하는 복주머니난의 꽃은 아주 특이한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그 특이한 모습에 이끌린 사람들의 남획으로 지금은 아주 찾아보기 어려운 식물이 되었습니다. 이 복주머니난 꽃의 모습은 마치 개불알같이 생겼는데, 그래서 오랫동안 속명으로 개불알꽃(개불알풀 이란 이름의 식물은 따로 있음)이라고 불려왔습니다. 이 꽃은 개불알같이 생긴 순판에 마치 꿀이 가득차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꿀이 없습니다. 그리고 먹이를 찾아 들어온 곤충이 부지런히 날개 짓을 하면 위쪽 꽃잎으로 들어온 입구 쪽 구멍을 슬그머니 닫혀 버립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곤충이 출구를 찾아 이리 저리 움직이는 동안 꽃가루를 몸에 잔뜩 묻히고 나서야 작은 틈으로 탈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순판을 발달시킨 난초꽃
이처럼 난초들은 곤충들을 꽃가루 매개자로 이용하는 충매화이지만, 그들이 꽃가루받이 매개자로 이용하는 곤충들에게 아무런 반대급부도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단지 모조 암컷 모양, 그들이 탐하는 먹이 냄새 혹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또 다른 것들을 이용하여 선택된 곤충들을 유혹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런 난초들의 꽃들은 꿀을 생산하고 이 꿀이 있음을 곤충에게 잘 알리기 이해 만들어진 일반적인 충매화들의 꽃과는 달리 특이한 형태를 유지할 필요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난초의 꽃은 3장의 꽃잎과 3장의 꽃받침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꽃받침도 꽃잎처럼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어 꽃잎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3장의 꽃잎 중에 가운데 하나를 특별히 크게 혹은 독특한 모습으로 발달 시킨 경우가 많은데, 이를 순판(입술꽃잎)이라고 부릅니다. 난초꽃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순판들을 발달 시키는 것은 바로 꽃가루받이 곤충을 효과적으로 유인하여 꽃가루를 성공적으로 곤충에 몸에 붙이기 위한 장치인 것입니다.
<순판이 잘 발달된 나도제비란> <아름다운 자색 꽃을 피우는 자란>
<사철 잎이 푸른 상록성 야생란인 사철란>
알고 보면 더 고운 야생란
야생화들을 찾아 산과 들로 다니다 보면 가끔 우리 야생란들을 만나게 됩니다. 사진으로 식물의 아름다움을 표현해 내려면 식물들이 모습을 세세히 살피게 되는데, 그리다 보니 저는 야생란들이 가진 특이한 매력에 반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자료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과학자들이 전해주는 야생란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신비로우면서도 경이로운 저들만의 세계를 알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그 후로 다시 만나는 야생란들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우리 식물학의 역사가 깊지 않아 아직 우리 야생란의 생태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인데, 시간이 가면 이도 해결이 되겠지요. 어떻습니까? 우리 산과 들에 피어나는 우리 자생란, 보고, 알고, 느끼고 싶지 않나요
출처 :풍나무 원문보기▶ 글쓴이 : 풍나무
